채빈하·채석영 효자각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300644
한자 蔡彬夏 蔡錫永孝子閣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신일리 1210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윤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4년연표보기 - 채빈하·채석영 효자각 중건
현 소재지 채빈하·채석영 효자각 -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신일리 1210 지도보기
성격 효자각
정면 칸수 1칸
측면 칸수 1칸

[정의]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신일리에 있는 채빈하채석영의 효자각.

[개설]

채빈하·채석영 효자각(蔡彬夏·蔡錫永孝子閣)은 조선 후기 인조(仁祖) 때의 효자인 채석영과 고종(高宗) 때의 효자인 채빈하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채석영채빈하의 정려 현판을 하나의 효자각에 모셔 놓았다.

채석영의 본관은 평강(平康)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고, 어머니가 병석에 눕자 온갖 정성을 다하여 병간호를 하였으나 어머니는 채석영이 일곱 살 때 사망하였다. 채석영은 열세 살 때 아버지마저 사망하자 보름 동안 잠도 자지 않고 장례를 치렀다. 아버지 묘소의 봉분이 거의 완성되었을 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모두들 집으로 피신하였는데, 상주(喪主)인 채석영이 보이지 않아 사람들이 다시 산소로 가 보니 채석영이 홀로 묘소 앞에서 엎드려 울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살펴보니 신기하게도 울고 있던 채석영은 비를 한 방울도 맞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채석영은 이후 3년간 시묘살이를 하면서 목욕도 하지 않고 머리도 빗지 않았으며, 옷도 갈아입지 않으며 슬퍼하였다. 또한 채석영이 시묘살이를 하는 동안 항상 큰 호랑이가 곁에서 보호해 주었다고 한다. 1649년(인조 27)에 채석영에게 정문(旌門)이 내려졌다.

채빈하의 본관은 평강이다. 아버지가 병에 걸려 위독하자 백방으로 약을 구하러 다니며 병간호를 하였으나 별 효과가 없어 열한 살 때 아버지의 상을 당하였다. 이후 3년 동안 지극정성으로 시묘살이를 하였다. 1889년(고종 26)에 채빈하에게 정문(旌門)이 내려졌다.

[위치]

채빈하·채석영 효자각영월군 주천면 신일리에 있다.

[변천]

채빈하·채석영 효자각은 1974년 4월 후손인 채수행이 보수하였고, 1994년 후손인 채원석이 중건하여 1998년에 보수되었다.

[형태]

채빈하·채석영 효자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정사각형 기와 건물이다. 하나의 각(閣)에 두 사람의 현판을 걸어놓았다. 하나는 “學生孝子平康蔡錫永之門 命旌(학생효자평강채석영지문 명정)”이라고 쓰여 있고, 다른 하나는 “學生孝子平康蔡彬夏之門 命旌(학생효자평강채빈하지문 명정)”이라고 쓰여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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