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형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300724
한자 崔時亨
영어공식명칭 Choe Sihyeong
분야 종교/신종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직동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집필자 엄찬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27년 3월 21일연표보기 - 최시형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61년 6월 - 최시형 동학 입도
활동 시기/일시 1880년 5월 - 최시형 『동경대전』 간행
몰년 시기/일시 1898년 6월 2일연표보기 - 최시형 사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863년 8월 14일 - 최시형 동학 제2대 교주가 됨
활동지 최시형 은거지 - 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직동리 지도보기
성격 종교인
성별
대표 경력 천도교 제2대 교주

[정의]

개항기에 강원도 영월 지역에서 몸을 숨기고 활동하였던 천도교 제2대 교주.

[개설]

최시형(崔時亨)[1827~1898]은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 출신이며, 본관은 경주, 호는 해월(海月)이다. 1861년 최제우(崔濟愚)[1824~1864]가 창시한 동학에 입도하였다. 최제우가 체포되어 죽자 제2대 교주로서 강원도 영월에서 재기를 도모하고 동학의 종교적 기틀을 확립하였다.

[활동 사항]

최시형은 최제우가 동학을 창시하여 포교하기 시작한 1861년 6월 입도하여 최제우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1863년에는 최제우로부터 동학을 포교하라는 지시를 받고 경상북도 동북 지역을 순회하면서 포교 활동을 벌였고, 7월 북도중주인(北道中主人)에 임명되었으며, 8월 14일 도통을 승계받아 제2대 교주가 되었다. 최제우가 좌도난정(左道亂政)의 죄목으로 체포된 후에는 동학교도들이 살고 있던 경상북도 영양 지역의 용호동으로 옮겨 동학을 재건하는 활동을 벌였다. 그후 동학교도 이필제(李弼濟)가 난을 일으키자, 관군에게 쫓겨 소백산을 거쳐 태백산으로 가던 중 강원도 영월에서 1년 10개월간 피신하였다.

최시형은 강시원과 함께 산삼 캐는 심마니로 가장하여 지금의 영월군 산솔면 직동리 산 중턱에 있는 바위굴로 피신하였다. 그후 영월에서 정일진(鄭一進)의 집에 잠시 머물러 있다가 다시 박용걸(朴龍傑)의 집으로 옮겨 거주하였다. 최시형박용걸의 아버지와 의형제를 맺고 입도식을 거행하였으며, 49일 기도제를 지내며 교인들을 모아 놓고 동학의 교리를 설명하기도 하였다. 이때 최시형은 동학 재건의 기틀을 마련하고 동학 교리의 기초 확립과 교세 확장을 위하여 전국 각지에 교구제와 포제를 실시하며 각 포에는 접주를 두어 통솔하게 하였다.

최시형은 강원도 각지로 포교 활동을 다니며 교세를 확장하였고, 1880년 5월에는 강원도 인제에서 동학의 경전인 『동경대전(東經大全)』을 간행하였다. 동학의 조직이 안정되고 교세가 확장되자 1885년에는 동학의 본거지를 충청북도 보은으로 옮겼다. 이후 1892년 교조신원운동과 1894년 동학농민운동을 주도하며 활동하였으나 1898년 3월 강원도 원주에서 체포되어 6월 2일 교수형을 당하였다.

[묘소]

최시형의 묘소는 경기도 여주시 금사면 주록리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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