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걸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300725
한자 朴龍傑
영어공식명칭 Park Yonggeol
분야 종교/신종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직동리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엄찬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지 박용걸 출생지 - 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직동리 지도보기
성격 동학교도
성별

[정의]

개항기에 강원도 영월군으로 피신한 동학 제2대 교주 최시형을 도운 동학교도.

[개설]

박용걸(朴龍傑)[?~?]은 지금의 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직동리 출신이다. 동학의 제2대 교주인 최시형(崔時亨)이 1871년에 발생한 이필제(李弼濟)의 난을 피하여 영월 지역으로 숨어들자 최시형을 도와 보호하고 동학에 입도하였다.

[활동 사항]

이필제의 난은 이필제·최시형 등이 음력으로 1871년 3월 10일에 교조인 최제우(崔濟愚)가 순교한 날을 기하여 교조신원운동과 무장 투쟁을 전개하고자 경상도 동학교도 500여 명을 동원하여 영해부를 습격하여 점령하였던 운동이다. 이필제의 난 이후 최시형은 쫓기는 몸이 되어 강수(姜洙)와 함께 직동리에서도 외딴 곳에 있는 박용걸의 집을 은밀히 찾아갔고, 박용걸최시형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최시형이 사정을 이야기하고 며칠을 쉬게 하여 달라고 청하자 박용걸은 이제 추운 겨울이 다가오는데 어디로 가서 누구의 구원을 받겠냐며 자신의 집에서 겨울을 나자고 권하였다. 최시형은 고마운 마음에 박용걸에게 형제의 의를 맺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하였다. 박용걸은 흔쾌히 허락하고 의형제를 맺었고 최시형과 강수는 박용걸의 도움으로 그해 겨울을 따뜻하게 지낼 수 있었다.

박용걸최시형의 소식을 듣고 순흥[현 경상북도 영주]에서 찾아온 자신의 형과 최시형한테서 동학의 교리를 전하여 듣고 동학교도가 되었다. 박용걸의 도움으로 무사히 겨울을 지낸 최시형은 동학을 재건할 기회를 만들었는데, 특히 박용걸의 형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최시형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이러한 박용걸 형제의 지원은 동학 재건에 큰 밑받침이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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