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300777
한자 金應文
영어공식명칭 Kim Eungmoo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강원도 영월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엄찬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907년 - 김응문 김상태 의진 가담
활동 시기/일시 1910년 5월 28일 - 김응문 경상북도 영주에서 밀정 김해수를 처단하고 군자금 모집 활동 전개
활동 시기/일시 1912년 1월 17일 - 김응문 경성공소원에서 사형 언도
몰년 시기/일시 1912년 2월 8일연표보기 - 김응문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9년연표보기 - 김응문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출생지 외룡리 -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외룡리 지도보기
활동지 영주 - 경상북도 영주시
성격 의병
성별 남성

[정의]

개항기 강원도 영월 출신의 의병.

[개설]

김응문(金應文)[?~1912]은 영월 출신으로, 구한말 일제 침략에 저항하여 항일 의병 항쟁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고종 황제는 을사늑약의 무효화를 청원하기 위하여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였다. 일제는 이를 빌미로 1907년 고종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켰고, 순종 황제를 즉위시킨 후 한일신협약을 체결하였다. 한일신협약으로 대한제국의 통치권이 대부분 통감부로 넘어가고 부속 협약에 의하여 군대마저 해산되자, 해산 군인들이 의병에 참여하며 정미의병이 전국적으로 거세게 일어났다.

이때 영월 지역에서 김상태(金尙台) 의병장이 의진을 결성하고 항일 투쟁을 시작하자 김응문은 이에 가담하였다. 1909년 6월 7일 김응문은 의병 60여 명과 함께 경상북도 순흥군 봉양면 남대리[현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에서 밀정 조만실(趙萬實)을 처단하였다. 1910년 5월 28일에는 김동운(金東雲) 등과 함께 단산면 병산리에서 밀정 김해수(金海秀)를 처단하고 황 진사로부터 군자군 400냥을 모금하였다.

김응문은 이 일로 일제 헌병에게 체포되어 1912년 1월 17일 경성공소원에서 강도 및 살인 혐의로 사형을 언도받았고, 1912년 2월 8일 형 집행으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김응문의 공적을 기려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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