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중암 전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301275
한자 澐重庵 傳說
영어공식명칭 Legend Of Unjungam
이칭/별칭 「운중암의 연기전설」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문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남기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83년 5월 24일 - 「운중암 전설」 박영국에게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6년 2월 25일 - 「운중암 전설」 『한국구비문학대계』2-8에 「운중암의 연기전설」이라는 제목으로 수록
관련 지명 운중암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문산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지명유래담
주요 등장 인물 정씨 총각|조씨 여인
모티프 유형 연기론적 운명

[정의]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문산리의 운중암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운중암 전설」은 운중암(雲中庵)에 얽힌 지명유래담이다. 운중암은 영월군 북면 마차리 요봉(要烽)에서 오른편 산골을 거쳐 올라가다 산등성이를 따라 내려가면 나오는 암자이다.

[채록/수집 상황]

「운중암 전설」은 1986년 간행된 『한국구비문학대계』2-8에 「운중암(雲中庵)의 연기전설(緣起傳說)」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1983년 5월 24일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으로 현지 조사를 나가 주민 박영국[남, 67세]에게 채록한 것이다.

[내용]

옛날 영월읍 문산리에 정씨 총각이 살고 있었다. 총각은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몹시 궁색하게 살았다. 삼대독자인데도 서른 살이 되도록 장가를 들지 못하였다. 총각은 다른 사람의 농사를 도와주며 생계를 꾸려 가고 있었으나, 농사일이 없을 때는 약초를 캐다가 팔았다.

어느 해 여름, 장마가 오래 계속되어서 농사일이 없었고, 약초를 캐러 나설 수도 없었다. 총각은 저장하여 두었던 약초를 영월읍에 가지고 가서 판 후에 약간의 식량을 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보덕사(報德寺)라는 절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마침 그날이 백중날이어서 많은 신도들이 법회에 참여하고 있었다. 총각은 호기심에 이끌려 절로 들어섰다. 난생처음 절에 오게 된 총각은 많은 사람들이 불공을 드리는 모습을 보고 자기도 그래야 되는 줄 알고 사람들을 따라 수없이 절을 하였다. 미소를 짓고 있는 부처를 보고 무의식중에 “저는 삼대독자이온데 장가 좀 들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기원하였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점심을 얻어먹고 다시 돌아오는 길에 이번에는 금몽암(禁夢庵) 앞에 이르게 되었다. 보덕사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법회에 참여하고 있었다. 총각은 거기에도 들어가 한동안 불공을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총각이 약초를 캐러 폭포가 있는 어느 산골에 가게 되었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서 총각은 폭포 옆에 있는 동굴로 들어가 비를 피하였다. 굴속에 들어가 보니 이전에 절에서 본 부처 같은 불상이 있었다. 사실은 불상 형상을 한 종유석이었다. 순박한 총각은 종유석을 불상으로 알고, 그 앞에 절을 하면서 장가를 들게 하여 달라고 기원하였다. 비가 그친 후 다시 약초를 캐는데 평상시보다 캐는 양이 많았다. 수확이 좋아 한동안 그곳에만 가게 되었고, 굴에 들어가 기도하며 절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루는 폭포 옆에서 점심을 먹고 양지 쪽에서 쉬고 있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갑자기 산골 일대가 흰 구름으로 가득 차더니 백발노인이 구름 속에서 나타났다. 노인은 “총각은 요봉으로 빨리 가서 곤욕을 치르는 젊은 여인을 구하라. 지체 말고 곧바로 가야 한다.” 하고 이르고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런 뒤 구름이 주변으로 몰려들면서 자신을 점점 무겁게 조여 왔다. 구름의 압박이 무겁게 느껴지고, 호흡이 막힐 것 같아 몸부림치다 잠에서 깼다.

기이한 생각이 든 총각은 재빨리 요봉으로 달려가 보았다. 요봉에서는 한 젊은 여인이 무인지경(無人之境) 상황에서 어느 나병 환자에게 붙들려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신체 건강하고 힘이 좋았던 총각은 나병 환자를 쫓아 보내고 여인을 구하였다. 알고 보니 여인은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의 조씨 가문 출신인데,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의 권씨 집안으로 시집을 갔다가 스물다섯 살이 되도록 아기를 낳지 못하여 소박을 맞고 친정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여인의 사정을 모두 듣고 난 총각은 딱한 생각이 들어 자기와 살기를 청하였고, 여인 역시 친정에 돌아가도 신통한 일이 없을 듯하여 같이 살기를 허락하였다. 삼대독자인 총각은 아기를 낳을 수 있을지 근심하였고, 여인 역시 아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부부는 매일같이 폭포가 있는 곳으로 약초를 캐러 다니면서 자식의 점지를 기도하였다. 부부의 정성이 어찌나 지극하였던지 석 달 만에 부인이 잉태를 하였다. 늘 부부가 함께 약초를 캐며 노력한 결과 살림도 넉넉하여졌다. 그 후 부부는 삼형제를 낳고 행복하게 잘 살게 되었다고 한다. 훗날 어느 보살이 이곳에 암자를 지었는데, 전하여 오는 전설 속의 ‘구름이 무겁게 압박하였다’는 소재를 따서 암자 이름을 ‘운중암’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운중암 전설」의 주요 모티프는 ‘연기론적 운명’이다. 노총각이 아내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다는 보은설화 중 하나이다. 지명과 관련된 설명 설화이기도 하다. 지극한 정성을 다하면 반드시 보상이 뒤따른다는 교훈적 성격을 지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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