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선하여 당대발복한 유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301276
한자 慈善- 當代發福- 劉氏
영어공식명칭 Yoo's Family Who Made a Success by Philanthropy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강원도 영월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남기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9년 12월 2일 - 「자선하여 당대발복한 유씨」 『영월군지』에 수록
관련 지명 옥녀봉 - 강원도 영월군 남면 북쌍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인물 유래
주요 등장 인물 유씨|부인|노승
모티프 유형 선행에 따른 성공담

[정의]

강원도 영월군 남면 북쌍리의 옥녀봉 인근에 있는 유씨 묘소와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자선하여 당대발복한 유씨」는 유씨(劉氏) 부부의 선행과 성공을 담은 이야기인데, 유씨 집안의 묘가 영월에 남아 있다. 영월에서 제천 방향으로 가다 보면 문곡(文谷)삼거리가 있고, 거기서 능선 사이로 큰길이 이어진다. 왼쪽에는 옥녀봉(玉女峯)이 있고, 그 오른쪽 양지바른 곳에 자리한 묘 두 기가 유씨 부자의 묘이다. 묘의 서쪽 마을이 ‘갈골’이고, 동남쪽 강 건넛마을이 ‘문개실’이다.

[채록/수집 상황]

「자선하여 당대발복한 유씨」는 2019년 간행된 『영월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옛날 영월 갈골에 유씨라는 농부가 어렵게 살고 있었다. 농부는 농토가 없어서 강 건너 문개실로 가서 농사를 지었다. 집과 농토가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점심은 항상 그 부인이 날라다 주었다. 어느 봄날 오후, 유씨의 부인이 남편에게 점심을 날라다 주고 돌아오는 길에 지쳐 쓰러진 노승을 발견하였다. 마음 착한 부인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며 “왜 여기에 쓰러져 있습니까?”하고 물었고, 노승은 허기가 져서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부인의 수중에는 빈 그릇뿐이었고, 집에 가 보아야 먹을 것을 마련할 처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냥 버려 두자니 노승이 굶어 죽을 것만 같았다.

마침 출산 후 아기 젖을 먹이는 시기였던 부인은 우선 사람부터 살려 놓아야겠다는 생각에 자신의 젖꼭지를 노승의 입에 물렸다. 허기졌던 노승은 본능적으로 젖을 빨아 먹었다. 정신이 든 노승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감격한 마음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였다. 부인의 처사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로서는 더더욱 상상하기 어려운 자선(慈善)이었다. 노승은 눈물을 흘리면서 치하하였고, 주인어른에게 인사라도 하고 가야겠다며 남편을 만나게 하여 달라고 청했다. 부인은 민가 드문 곳에 지친 노승을 두고 가기도 난처하여 집으로 데리고 왔다.

이윽고 남편 유씨가 돌아왔다. 노승은 큰절을 하고 전후에 일어났던 모든 일을 이야기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였다. 심성이 고운 유씨 역시 자기 부인이 한 처사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였고, 노승에게 집에서 쉬어 가라고 권하였다. 주인이 인도하는 대로 노승이 건넛방에 들어 그날 있었던 일을 다시 생각하면서 누워 있는데, 유씨 부부가 저녁상을 들고 들어왔다. 노승은 집주인이 상주 복장을 한 것을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노승은 이튿날 아침 떠나면서, “태산 같은 재생의 은혜를 갚을 길이 없습니다. 보아하니 상중인 모양인데 묏자리는 정하였습니까?”하고 물었다. 유씨는 “가세가 이 꼴인데 묏자리가 다 뭡니까. 묏자리 잡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노승은 “그러면 소승이 아는 것은 없으나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는다는 뜻에서 묏자리를 하나 보아 드리겠습니다. 나하고 같이 나가서 봅시다.”라고 하여 둘은 묏자리를 찾으러 나섰다.

얼마 후 노승은 남쪽을 바라보며 지팡이를 꽂고는, “당신은 무엇을 소원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유씨는 “우선 가난한 것이 한입니다. 글공부는 하지 못하였으나 기운은 세니까 무관 계통의 일이면 해낼 법도 합니다. 벼슬이라는 명칭 자체도 모르는데, 사람들에게 만호첨사(萬戶僉使)는 얻어들었으니 만호 한자리나 하면 만족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노승은 “앉으면 보이고 서면 안 보이는 큰 자리도 있어 삼상육판(三相六判)이 날 만한 좋은 곳도 있긴 하지만, 당대발복(當代發福)은 할 수 있을 것 같으니 이 자리에다 아버지 묘를 쓰도록 하시오.”라며 자리를 짚어 주고는 표연히 떠나갔다. 노승이 알려 준 묏자리는 옥녀봉과 뒷산이 연결되어 있는 동남향 양지바른 곳이었다. 유씨는 그 자리에서 아버지 장사를 지냈다.

그 후 어느 해 가을, 전과 같이 문개실 밭에서 농사일을 하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배를 젓는 삿대가 물바닥에 꽂혀서 빠지지 않았다. 물속에 들어가 살펴보니 삿대가 자루에 끼어서 빠지지 않고 있었고, 그 자루를 치우려고 보니 엽전을 넣은 전대가 다섯 개나 들어 있었다. 유씨 부부는 엽전을 그냥 가질 수가 없어 관가에 신고하였으나 끝내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관가에서는 신고된 물건을 유씨에게 되돌려 주었고, 유씨는 그 돈으로 인근 땅을 사서 부유하게 살게 되었다. 그제야 묏자리를 잡아 준 노승이 보통 중이 아닌 것을 깨달은 유씨는 벼슬할 생각이 났다. 벼슬 한자리 얻을 생각에 노잣돈을 챙겨 서울로 올라갔다.

의지할 만한 사람이 없던 유씨는 벼슬아치가 많이 살고 있는 서울 가회동의 객줏집에 방을 얻어 놓고 거리 구경이나 하면서 소일하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캄캄한 밤중에 변소에 가서 소변을 보고 나오는데, 마침 옆의 큰 대갓집 담을 넘어가는 검은 그림자를 발견하였다. 힘이 센 유씨는 담 넘어가는 자의 다리를 붙잡아 꽁꽁 묶은 다음 대갓집 문을 두드렸다. 청지기는 왜 밤중에 소란을 피우냐며 판서 대감이 주무시니 조용히 하라고 하였다. 주인이 판서란 소리를 들은 유씨는 더욱 소리를 높여 도적놈을 잡았으니 문을 열라고 외쳤다. 잠자던 판서대감은 바깥이 소란하여 그 연유를 묻게 되었고, 유씨는 도적놈이 담을 넘으려고 하는 것을 잡았다고 말하며 인계하여 주었다. 조사 결과 도적은 당파 싸움으로 판서를 죽이려던 자객임이 판명되었다. 생명을 잃을 뻔하였던 판서는 유씨에게 사의를 베풀었고, 유씨는 판섯집 문객으로 소일하며 지내게 되었다.

시간이 흐른 후 유씨는 집을 떠난 지 오래되어 그만 돌아가겠다고 말하였다. 판서는 더 머물기를 권유하면서 소원을 물었다. 유씨는 배운 것은 없으나 힘이 세니 만호첨사나 한자리하면 좋겠다고 말하였다. 판서는 어렵지 않은 청이라며 즉시 그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였다. 결국 유씨는 만호첨사 벼슬을 얻었다. 힘이 세고 정직하여 맡은 일을 잘 하였으며, 나라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이처럼 노승이 예언한 대로 유씨네는 당대발복의 꿈을 이루었다. 유씨 부부는 죽은 뒤 명당터인 아버지 묘소 옆에 묻혔다고 한다. 마음씨 착한 유씨 부인의 선행과 성공담은 후세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전하여지고 있다.

[모티프 분석]

「자선하여 당대발복한 유씨」의 주요 모티프는 ‘선행에 따른 성공담’으로서 선행은 보은으로 되돌아온다는 주제를 담은 설화의 하나이다. 착한 일을 하면 착한 일에 대한 보상이 뒤따른다는 교훈적 성격을 지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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