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12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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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嚴氏- |
영어공식명칭 | Eom’s Proud of Literature |
이칭/별칭 | 「영월엄씨의 글 자랑」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남기택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3년 5월 24일 - 「엄씨의 글 자랑」 박영국에게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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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86년 4월 15일 - 「엄씨의 글 자랑」 『한국구비문학대계』2-8에 「영월엄씨의 글 자랑」이라는 제목으로 수록 |
관련 지명 | 영월군 - 강원도 영월군 |
채록지 | 영흥리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
성격 | 설화|인물 유래 |
주요 등장 인물 | 영월엄씨 |
모티프 유형 | 가문의 명예 |
[정의]
강원도 영월군에서 영월엄씨 가문의 글솜씨 자랑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엄씨의 글 자랑」은 영월엄씨(寧越嚴氏)가 글솜씨를 자랑하기 위하여 인근 지역으로까지 가서 시를 읊었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엄씨의 글 자랑」은 1986년 간행된 『한국구비문학대계』2-8에 「영월엄씨의 글 자랑」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1983년 5월 24일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로 현지 조사를 나가 주민 박영국[남, 67세]에게 채록한 것이다.
[내용]
영월은 단종(端宗)[1441~1457]의 묏자리를 쓴 충신 엄흥도(嚴興道)가 난 곳으로서 영월엄씨가 많이 살고 있다. 영월엄씨는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영월이 전통적인 문향(文鄕)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영월엄씨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편 세간의 인식이 영월엄씨들의 글에 대하여서 대단히 높게 평가하는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엄병록이라는 사람의 조부가 글을 잘하였다고 하지만, 주변 양반들은 영월엄씨를 비하하였다. 엄흥도의 후예들이기는 하지만 원래는 글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영월엄씨들은 이에 대하여 반론을 펴고 싶었다.
이러한 편견을 불식시키기 위하여 영월엄씨들은 영춘[현재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이라는 고장을 찾아갔다. 영월엄씨가 영춘을 찾아간다고 하자, 거기서 살고 있던 부유한 집안의 공부 잘하는 사람들 반응은 탐탁지 않았다. 그들은 영월엄씨들에 대하여서 ‘대단치 않아서 오는가 보다.’라고 생각하였다. 그중 한 집의 주인이 문틈으로 엄씨들이 오는 것을 내다보고 있었다.
이 장면을 눈치챈 영월엄씨가 시를 한바탕 읊었다. “소백연천 삼각원(召伯連天 三角遠)하니 대강만지 주인초[大江滿地 主初達]라.” 이 말의 뜻은 “소백산의 연봉은 삼각주로 연결되어 있고, 거기 있는 큰 강은 가득 차 주인을 처음 만난다.”와 같다. 이처럼 시를 지으니 과연 좋은 시라 할 만하였다. 엄씨가 읊은 시를 들은 주인은 “아, 이거 참으로 아는 사람이 왔나 보다.”라고 감탄하면서 엄씨를 불러들여서 환대하고, 자신이 영월엄씨를 낮추어 보았던 것을 반성하였다. 그리고 나귀 한 필에 옷 한 벌을 마련하여 입히고, 돈도 50냥을 주어서 보냈다는 이야기이다.
[모티프 분석]
「엄씨의 글 자랑」의 주요 모티프는 ’가문의 명예’이다. 목숨을 걸고 유교적 덕목을 지키었던 엄씨 가문이 학식에도 뛰어난 소양이 있었음을 부각하는 과시형 민담 성격을 지닌다. 또한 신분에 따라 문식을 결정하는 당대 세태에 대한 풍자의 의미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