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12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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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八槐里 地名由來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팔괴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대형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2004년 10월 1일 - 「팔괴리 지명유래」 엄석인에게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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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5년 1월 10일 - 「팔괴리 지명유래」 『강원의 설화』 2권에 수록 |
관련 지명 | 팔괴리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팔괴리 |
채록지 | 팔괴리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팔괴리 |
성격 | 지명유래담 |
주요 등장 인물 | 신 서방네|안 서방네 |
[정의]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팔괴리의 지명유래에 관하여 전하여 오는 이야기.
[개설]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팔괴리(八槐里)는 원래 영월군 남면 땅이었으나 1973년 7월 행정 구역 개편으로 영월읍에 편입되었다.
「팔괴리 지명유래」는 영월읍 팔괴리의 지명유래에 관한 전설이나, 실제 팔괴리는 1914년 조선총독부령(朝鮮總督府令)에 의하여 ‘팔계리(八溪里)’와 ‘괴안리(槐安里)’에서 각각 첫 글자를 따서 ‘팔괴리(八槐里)’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괴안리’는 발전소 앞에 있는 잠수교를 지나 흥월리로 가는 길목 마을이다. 원래의 이름은 ‘묘족리(描足里)’라고 하는데, 강 건너 마을인 정양리(正陽里)의 지형이 계족산(鷄足山)의 맥이 뭉쳐서 황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형(金鷄包卵形)의 명당을 형성하였다. 그런데 괴안리는 고양이가 닭을 해치려는 형상이므로 지명을 묘족리(描足里)라 하였으나 마을 이름을 다시 ‘괴안리(槐安里)[큰 느티나무가 있는 편안한 마을]’로 고쳤다. 그리고 연수앗[宴需田]에서 팔계(八溪)로 넘어가는 아홉 굽이의 고개도 ‘구개(九犬)’라고 하여 정양리의 명당을 보호하였다고 한다. ‘팔계리’는 괴안리 서북쪽 마을인데, 덕포 비행장에서 찻배를 건너야 갈 수 있다. ‘큰팔계’와 ‘작은팔계’가 있으며, 충의공(忠毅公) 엄흥도(嚴興道)의 묘가 있다. 여덟 개의 골짜기로 이루어진 마을이므로 ‘팔계’라고 하였다. 엄흥도의 묘를 중심으로 남쪽 마을은 ‘큰팔계’ 북쪽 각고개로 넘는 마을은 ‘작은팔계’라고 한다.
[채록/수집 상황]
「팔괴리 지명유래」는 2005년 간행한 『강원의 설화』 2권에 수록되어 있다. 2004년 10월 1일 팔괴리에서 엄석인[남, 63세]에게 채록하였다.
[내용]
팔괴리에는 명당이 여덟 군데 있어서 ‘팔괴’라고 한다. 그중 하나는 ‘시누지’인데 신 서방네가 묘를 써서 시누지라고 한다. 그 아래쪽에 ‘안평강’이라는 데가 있는데 안 서방네가 묘를 쓴 것이다. 동쪽에 ‘동북한’ 산소가 있으며, 그 밑으로 단종(端宗)[1441~1457]을 모셨던 엄흥도의 산소가 있고, 그 앞에 서낭당이 있으니 명당 중에 하나로 들어간다. 그 건너에 ‘잣나무배기’가 있는데 200년 넘은 잣나무가 있어서 ‘잔나배기산소’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홉개’라는 명당도 있는데 어디인지는 모른다고 한다. 영월읍 하송리(下松里)에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어서 거기서 건너다보면 아홉개 명당이 보이는데, 막상 가서 찾으려고 하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1914년에 팔계리와 괴안리를 합쳐 팔괴리라 한 사실에 미루어 보면 「팔괴리 지명유래」는 팔계리 지명유래담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팔계리 지명 설화를 보면 여덟 고개가 있어서 팔계리가 되었다고 하는데, 명당이 여덟 군데 있어서 팔괴리라고 한다는 내용과 유사하다. 즉, 고개와 명당 사이에 변용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