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송리 지명유래와 은행나무 이야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301301
한자 下松里 地名由來- 銀杏-
이칭/별칭 「하송리 은행나무의 신통」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하송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대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81년 7월 10일 - 「하송리 지명유래와 은행나무 이야기」 함기성에게 채록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2004년 10월 1일 - 「하송리 지명유래와 은행나무 이야기」 이석제에게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3년 - 「하송리 지명유래와 은행나무 이야기」 「하송리 은행나무의 신통」이라는 제목으로 『한국구비문학대계』 2-4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5년 - 「하송리 지명유래와 은행나무 이야기」 『강원의 설화』 2권에 수록
관련 지명 영월 하송리 은행나무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은행나무길 65[하송리 128-7]지도보기
채록지 어성전리 -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어성전리
채록지 하송리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하송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

[정의]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하송리의 지명유래와 하송리 은행나무에 관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하송리 지명유래와 은행나무 이야기」에 나오는 하송리(下松里) 은행나무영월엄씨(寧越嚴氏)의 시조 엄림의(嚴林義)가 심었으리라고 추정된다. 추정의 근거는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의 제자로 알려진 봉서(蓬西) 신범(辛汎)[1823~1879]이 본관인 영월을 찾아보고 남긴 「월행(越行)」이라는 기행문에 다음과 같은 시가 있기 때문이다.

“발산평지락 강상와룡여 중유천년행 고래엄씨거(鉢山平地落 江上臥龍如 中有千年杏 古來嚴氏居)[발산이 평지로 잦아드니/ 강 위에 용이 누워 있는 것 같네/ 거기 천년 된 은행나무 있고/ 옛부터 엄씨들이 살고 있다네]”

[채록/수집 상황]

「하송리 지명유래와 은행나무 이야기」는 1981년 7월 10일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어성전리에서 함기성[남, 78세]에게 채록하였다. 이 내용은 「하송리 은행나무의 신통」이라는 제목으로 『한국구비문학대계』 2-4에 수록되었다. 2004년 10월 1일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하송리에서 이석제[남, 80세]에게 채록한 「하송리 지명유래와 은행나무 이야기」는 『강원의 설화』 2권에 수록되었다.

[내용]

영월군 영월읍 하송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상송리(上松里) 전체를 포함하고 영흥리(永興里) 일부를 병합하여 ‘하송리’라 하였다. 하송리라는 지명은 큰 소나무숲 밑에 있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인데, 큰 은행나무와 행정(杏亭)이라는 정자가 있어서 ‘행정(杏亭)’이라고 한 적도 있었다. 하송리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영월 하송리 은행나무’가 있다. 하송리 은행나무는 수령이 1,000~1,200년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29m, 둘레는 14.8m이다.

하송리 은행나무는 주민들이 마을의 신목으로 여겼다고 하는 만큼 다양한 전설이 전한다. 2004년 영월군 영월읍 하송리에서 채록한 내용과 1981년 양양군 현북면에서 채록한 내용을 종합하면 하송리 은행나무는 신통력이 있어서 은행나무 가지가 부러지면 그쪽으로 화가 생긴다고 한다. 6·25전쟁 때는 북쪽 가지가 부러졌다고 한다. 그리고 큰비가 올 때는 비 오기 전에 은행나무에서 소리가 난다고 하며, 나무로 불을 때던 시절에 부러진 은행나무 가지는 불쏘시개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부러진 은행나무 가지를 불쏘시개로 사용하면 해롭다는 인식 때문이다. 또한 옛날 아주 맑은 날에 말을 타고 가던 사람이 잠시 쉬려고 말을 그 은행나무에 매어 두었는데, 갑자기 날이 컴컴하여지면서 소나기가 퍼붓고 나뭇가지 하나가 뚝 부러지더니 그 말을 때려 즉사하였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하송리 지명유래와 은행나무 이야기」는 사물이 오래되면 정령이 깃든다고 하는 사유가 전제된 이야기이다. 은행나무를 신성시하다 보니 땔감으로도 사용하지 않고 말을 매어 두는 용도로도 사용하지 않게 된 상황들을 보여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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