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20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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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土室 |
영어공식명칭 | Tosil |
이칭/별칭 | 도곡(道谷),독곡(篤谷),톡실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무릉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엄흥용 |
[정의]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무릉리에 있는 자연마을.
[개설]
토실(土室)은 무릉3리의 중심 마을로 옛 지명은 도곡(道谷) 또는 독곡(篤谷)이다. 생육신 원호(元昊)와 연관이 있는 마을이다. 원호는 원주(原州) 출신이며, 자는 자허(子虛), 호는 관란(觀瀾)·무항(霧巷)이고, 아버지는 원헌(元憲)이다. 1423년(세종5) 식년 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여 직제학에 이르렀다. 1453년 수양대군이 정권을 잡자, 향리인 원주로 낙향하였다. 단종이 영월에 유배되자, 서강 서쪽인 송학면 장곡리에 집을 지어 이름을 관란정(觀瀾亭)이라 하였다. 강가에 나가서 시가를 읊기도 하고 혹은 글을 짓기도 하면서, 아침저녁으로 영월을 바라보고 눈물을 흘리며 단종을 그리워하였다. 단종이 죽자 무릉리 토실에서 3년 상을 마친 뒤 고향인 원주에 돌아와 문 밖을 나가지 않았다. 1699년(숙종 25) 판부사(判府事) 최석정(崔錫鼎)의 건의로 고향에 정려가 세워지고, 1782년(정조 6)에 김시습(金時習)·남효온(南孝溫)·성담수(成聃壽)와 함께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무릉리 토실에는 원호의 사당이 있다. 강원도관찰사인 심상훈(沈相薰)이 1906년(고종 43)에 쓴 ‘모현사(慕賢祠)’라는 현판이 솟을삼문에 걸려 있고, 사당 앞에도 낙관이 찍힌 ‘모현사(慕賢祠)’ 현판이 있다. 1979년 ‘관란원호추모위원회’에서 모현사 앞에 높이 140㎝, 너비 45㎝, 두께 17㎝의 조선충신 관란원선생 신도비(朝鮮忠臣觀瀾元先生神道碑)를 세웠다.
[명칭 유래]
토실은 생육신 관란 원호가 은둔 생활을 할 때 토굴을 파고 살았으므로 ‘토실’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토실마을은 1457년 생육신 원호가 살았고, 1562년에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이 찾은 곳이다. 또, 남학명(南鶴鳴)[1654~1722]이 지은 『회운집(晦隱集)』에 수록된 「유사군기(遊四郡記)」에 남학명이 토실의 독곡서당(篤谷書堂)에 왔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같은 기록으로 미루어 토실마을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자연환경]
토실마을 앞에는 백덕산과 태기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합수되는 지역으로 ‘신선을 맞이한다’는 뜻을 가진 요선정(邀仙亭)이 있다. 토실마을 앞 법흥천이 요선정 앞에서 주천강과 합류한다. 그리고 기암절벽 아래에는 넓은 화강암 반석에 돌개구멍이 있다. 1562년(명종 17) 가을에 강원도관찰사 성순(成詢)과 평창군수양사언이 토실을 찾았고, 1563년에 양사언이 바위에 ‘요선암(邀仙岩)’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현황]
토실마을은 무릉3리에 위치하며, 2021년 현재 63가구 107명의 주민이 주로 밭농사를 지으면서 생활하고 있다. 토실마을에는 원영성 가옥, 호야지리박물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