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20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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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Berigol |
이칭/별칭 | 별이실,별이곡(別梨谷)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진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엄흥용 |
[정의]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진별리에 있는 자연마을.
[개설]
베리골은 ‘별이곡(別梨谷)’이라고도 하는대, 조선 후기의 학자 권섭(權燮)[1671~1759]은 기행가사인 『영삼별곡(寧三別曲)』에서 베리골의 풍경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별이실 외딴 마을 해는 어이 쉬 넘거니, 봉당의 자리 보아 더 새고 가자스라, 밤중에는 사립밧기 긴 바람 니러나며, 삿기곰 큰 호랑이 목가라 우는 소리, 산골이 울혀이셔 기염도 흘난할샤, 칼 빼며 겻희노코 이 밤을 계유새와[중략].”
권섭은 숙종 때 인물로 호는 옥소(玉所), 백취옹(百趣翁)이고, 자는 조원(調元)이다. 『영삼별곡』에는 권섭이 1704년(숙종 30)에 영월 주천을 출발하여 동강의 금강정, 봉래산, 거운리 등 명승지를 둘러보고 베리골에서 일박한 내용이 실려 있다. 그리고 삼척으로 가는 여정을 감각적 이미지로 섬세하게 표현한 『영삼별곡』은 권섭의 문집인 『옥소고(玉所稿)』에 실려 있다. 권섭은 44세 때 충청북도 청풍으로 이사하여 살면서 진경산수화를 그리는 정선과 교류하였으며, 54세에 제천 문암동으로 이주하여 89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50여 권의 문집에 2,000여 수의 한시와 75수의 국문시조, 80여 점의 그림을 남겼다.
[명칭 유래]
골짜기가 매우 깊고 벼리[베리, 병창] 밑에 있는 마을이므로 ‘별이실’에서 ‘벼리골’로 변하였다가 베리골이라 하였다.
[자연환경]
베리골 왼쪽 8부 능선에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된 영월 용담굴(龍潭窟)이 있다. 영월 용담굴은 고생대 석회암층에 형성된 길이 350m의 수직굴로 내부 온도는 계절에 관계없이 15~18℃가 된다. 4개의 큰 광장과 수십만 년 전에 생성된 석순과 종유석들이 있고, 30여 종의 생물이 살고 있다. 2021년 현재 일반인에게는 아직 개방되지 않았다.
베리골은 영월읍 정양리(正陽里)와 김삿갓면 진별리(津別里)의 경계인 각씨바위[모처녀바위]에서 영월 고씨굴로 가는 지방도 제88호선 좌측 골짜기에 있다.
[현황]
베리골 사람들이 가장 먼저 터를 잡고 살던 곳을 ‘텃마을’이라 하는데, 지금도 텃마을 연못 주위로 10여 가구가 살고 있다. 베리골은 1970년대 화전 정리를 하기 전만 하여도 70여 가구가 살았던 큰 마을이었다. 그 당시 마을 회의나 대동놀이는 텃마을에서 이루어졌다. 2021년 현재 16가구의 주민들이 밭농사에 종사하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