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해창수록』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302135
한자 嶺海唱酬錄
영어공식명칭 Yeonghae-changsurok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강원도 영월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용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07년 - 『영해창수록』 저자 박충원 출생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02년 - 『영해창수록』 저자 조사수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581년 - 『영해창수록』 저자 박충원 사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558년 - 『영해창수록』 저자 조사수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544년 - 『영해창수록』 최초 간행 추정
편찬|간행 시기/일시 1702년연표보기 - 목판본 『영해창수록』 간행
편찬|간행 시기/일시 2011년 12월 10일 - 역주본 『영해창수록』 발간
배경 지역 영월읍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지도보기
성격 한시집
작가 조사수|박충원

[정의]

1540년대 영월군수 박충원과 제주목사 조사수가 지방관 재임 시절 주고받은 한시를 엮은 책.

[개설]

『영해창수록(嶺海唱酬錄)』은 1540년대 초 영월군수로 재임했던 낙촌(駱村) 박충원(朴忠元)[1507~1581]과 같은 시기 제주목사로 재임한 송강(松岡) 조사수(趙士秀)[1502~1558]가 총 66회 주고받은 한시[시문수창(詩文酬唱)]를 엮은 책이다. 최초 편찬은 1544년(중종 39)으로 추정되며, 1702년(숙종 28) 박충원의 5대손인 박성석(朴星錫)[1650~1709]이 제주목사로 부임할 적에 남구만(南九萬)[1629~1711]에게 『영해창수록』의 서문을 받아 제주영(濟州營)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2011년 12월에는 제주시 문화유적지관리사무소에서 『영해창수록』 역주본[현행복 역주, 심경호 감수]과 영인본을 한 권의 책으로 출판하였다.

[구성]

『영해창수록』에는 박충원과 조사수가 총 66회에 걸쳐 주고받은 132편의 한시가 수록되어 있다. 역주본 『영해창수록』에는 주세붕(周世鵬)[1495~1554]의 「제영해창수록(題嶺海唱酬錄)」과 박충원의 후손인 박승건(朴承健)[1609~1667]의 발문이 추가로 삽입되었다. 부록으로는 박충원의 아들인 관원(灌園) 박계현(朴啓賢)[1524~1580]과 백호(白湖) 임제(林悌)[1549~1587]가 주고받은 「관원백호창수록(灌園白湖唱酬錄)」 역주본, 역주를 맡은 현행복의 『영해창수록』 해제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또한 규장각 소장본인 『영해창수록』 1702년 제주영 목판 간행본의 영인본도 수록되어 있다.

[내용]

『영해창수록』은 1540년(중종 35) 제주목사로 부임한 조사수와 1541년 영월군수로 부임한 박충원이 주고받은 한시를 엮은 책이다. 조사수와 박충원은 젊은 시절부터 뛰어난 문재(文才)로 주목받아 호당(湖堂)에서 함께 공부한 인물들이며, 지방관으로 부임한 이후에도 시를 주고받으며 긴밀한 교우 관계를 유지하였다. 기본적으로 조사수가 지은 시에 박충원이 화운(和韻)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며, 작품 수는 각 66수씩 총 132수에 달한다. 그 내용은 대체로 부임지에서의 경험과 소회, 벗에 대한 그리움이 주를 이룬다.

2011년 발간된 역주본에는 1544년 주세붕이 지은 「제영해창수록」이 함께 실려 있어, 『영해창수록』이 최초로 편찬된 것이 이즈음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특징]

『영해창수록』에 수록된 박충원의 시를 통하여 16세기 전반 영월 지역의 모습과 풍속을 살펴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영해창수록』은 육지와 바다의 물리적인 거리에도 수십 편에 달하는 시를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주고받았다는 점에서, 조사수와 박충원의 돈독한 교유 관계를 확인함은 물론, 조선 전기 문인이 영위하였던 시문 교유의 한 양상을 잘 보여 준다. 아울러 두 사람이 지방관으로 재임하였던 영월과 제주 지역의 풍속을 노래한 작품도 적지 않아, 16세기 산간·도서 지역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 조사수·박충원, 『영해창수록』(현행복 역주, 제주시 문화유적지관리사무소,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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