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인산요」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302166
한자 大王因山謠
영어공식명칭 Daewanginsanyo
이칭/별칭 대왕인산(大王因山)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강원도 영월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용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 시기/일시 1984년 7월 19일 - 「대왕인산요」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주문리에서 주민 고갑덕[남, 72]으로부터 채록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6년 - 「대왕인산요」 채록 문헌 『한국구비문학대계』2-9권 출간
채록지 「대왕인산요」 채록지 -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주문리 지도보기
가창권역 영월군 - 강원도 영월군
성격 의식요
기능 구분 장례의식요
가창자/시연자 고갑덕

[정의]

강원도 영월군에서 전승되어 온 단종과 관련된 장례의식요.

[개설]

「대왕인산요(大王因山謠)」는 조선 전기에 강원도 영월 지역에 유배되어 세상을 떠난 단종(端宗)의 넋을 위로하고 달래고자 부른 노래이다. 인산은 왕족과 그 비(妃)의 장례를 뜻한다. 영월군은 서강을 중심으로 장례의식요가 다른 지역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많이 전승되어 오는데, 「대왕인산요」 역시 그러한 장례의식요 가운데 하나이다. 영월군에서는 단종을 대상으로 한 대마지놀이, 대돋움[장례놀이]을 할 때 불렀다고 한다.

[채록/수집 상황]

『한국구비문학대계』2-9에 「대왕인산(大王因山)」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1984년 7월 19일 영월군 김삿갓면 주문1리에서 주민 고갑덕[남, 72]으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구성 및 형식]

「대왕인산요」단종의 일대기를 엮어 부르는 노래이다. 전반부에는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단종의 전후 사정을 「수식가(愁息歌)」에 실어서 엮어 나가다가, 후반부에는 이를 「회심곡(回心曲)」으로 바꾸어 단종의 혼령이 저승에 가서 무죄로 판명을 받고 염라대왕의 호의로 다시 태백산 신령이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내용]

「대왕인산요」의 노랫말에서 시작하는 도입부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어화넘차 에헤호/ 어화넘차 에헤호/ 어화어화 벗님네야/ 이내 말쌈 들어 보소/ 세상천지 만물 중에/ 사람이 최귀하며/ 그 많은 사람 중엔/ 임금님이 지존이라/ 상고 때는 단군 성조/이 땅에 하강하사/ 우리나라 이루었고/ 그 후에 기자왕이/ 평양에서 도읍하여/ 조선 천지 틀을 잡고/ 고구려 때 광개토왕/ 용맹을 떨치시어/만주 대륙 휩쓰러서/ 우리 국위 떨첬으며/ 신라 때의 문무왕은/ 삼국을 통일하사/ 통일 국토 이룩하매/ 천만 년의 터전 닦고/조선조의 세종대왕/ 한글을 창제하사/ 우리 문자 정립되니/ 영원 무궁 빛이러라/ 이렇듯이 영명하신/ 임금님이 계션 반면/ 용열한 임금들도/ 더러는 있었으니/ 연산군과 광해군은/ 임금 자리 있으면서/ 백성을 안 돌보고/ 부귀 방종 하였으니/ 뉘라서 임금답게/ 우러러 보았더냐/ 임금 권세 탐을 내던/ 수많은 사연들이/ 전하여 오것마는/ 우리 임금 단종같이/ 억울한 일 또 있으랴/ 지존의 자리인들/ 일생일사 정한 이치/ 어기지는 못하나니/ 황천객을 못 면하네/ 임금님들 가실 적에/ 만백성 호곡 속에/영정 만사 많은 깃발/ 앞길에 휘날리고/ 영요가 선도하며/ 호화로운 대여 뒤에/ 문무백관 소복 하고/ 백의 백성 장탄리에/ 수십 리 뻣쳐 가는/ 큰 인산을 치른 뒤에/ 천하 대지 잡아 놓고/고이고이 안장하여/ 능침을 모셨건만/ 유독히 우리 임금/ 단종대왕 그 어른은/ 인산이 없었으니/ 이 아니 한이련가/ 대왕님도 한이 되고/ 우리 백성 한이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영월 지역에 전승되어 오는 향토민요 중에는 단종과 관련한 것이 여럿 전하여 오는데, 「대왕인산요」, 「영월팔경가」, 「쌍다리노래」, 「한양가」, 「칡줄다리기 선소리」 등이 대표적이다.

[의의와 평가]

「대왕인산요」는 영월 지역에서 두드러지게 전승되는 장례의식요의 한 양상을 보여 줄 뿐 아니라, 깊은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난 단종의 혼을 달래고자 한 지역민들의 의식을 잘 드러내는 노래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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