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05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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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後津 |
영어공식명칭 | Huji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용철 |
관할 지역 | 후진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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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시대 강원도 영월 지역에 있었던 나루터.
[개설]
후진은 조선 시대 강원도 영월 지역에 있었던 나루터이며, 남한강을 이용하여 인력과 물자를 수송할 때 이용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후진은 남한강 수운을 이용하여 인력과 물자를 수송할 때 배를 정박시키기 위하여 만들었다.
[관련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 산천 조에 각 지역의 포(浦)와 진(津)이 기록되어 있는데, 후진은 밀적포과 함께 영월군에 있었다. 음곡천(陰谷泉)에 대한 기사에 따르면, 음곡천이 군의 북쪽 24리[9.43㎞]에 있는데 근원이 음곡(陰谷)의 바위틈에서 나와서 남쪽으로 흘러 후진으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또 금봉연(金鳳淵) 관련 기사에서는, 금봉연이 군의 남쪽 4리[1.57㎞]에 있는데 금장강과 후진이 금봉연에서 합류하여 남쪽으로 흘러가다가 영춘현(永春縣)에 이르러 눌어탄(訥魚灘)이 된다고 하였다.
[내용]
조선 시대 강원도 영서 지역은 남한강과 북한강, 임진강, 또는 그 지류와 인접한 지역이 많아 수로를 이용하여 물자를 주로 운반하였다. 이때 영월에서 남한강 수운을 이용하기 위하여 조성된 곳이 바로 후진이었다.
[변천]
후진이 만들어진 시점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신증동국여지승람』에 영월 지역의 나루터로 후진과 밀적포가 같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에, 후진은 1530년 이전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세기 중엽에 발간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데, 이때 이미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존재하였으나 기록에만 누락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의의와 평가]
후진은 조선 시대 강원도 영월 지역의 교통환경을 잘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