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05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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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密積浦 |
영어공식명칭 | Miljeokp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용철 |
관할 지역 | 밀적포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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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시대 강원도 영월 지역에 있었던 나루터.
[개설]
밀적포는 조선 시대 강원도 영월 지역에 있었던 나루터이며, 남한강을 이용하여 인력과 물자를 수송할 때 이용하던 곳이다.
[제정 경위 및 목적]
밀적포는 남한강 수운을 이용하여 인력과 물자를 수송할 때 배를 정박시키려고 만들었다.
[관련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 산천 조에 각 지역의 포(浦)와 진(津)이 기록되어 있는데, 밀적포는 후진(後津)과 함께 영월군에 있었다. 해당 기사를 보면 오늘날 영월읍 영흥리에 위치한 금강정에서 바라다본 밀적포의 풍경이 있는데, “강 건너로는 상덕촌(尙德村)이라는 마을이 있어 초가집과 울타리들이 뽕나무 사이로 숨었다 보였다 하며 그 남쪽 밀적포에는 나무들이 울창하여 마을의 연기와 물기운이 은은히 가리우고 어른거린다. 그 광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다.”라고 묘사하였다.
[내용]
조선 시대 강원도 영서 지역은 남한강과 북한강, 임진강, 또는 그 지류와 인접한 지역이 많아 수로를 이용하여 물자를 주로 운반하였다. 이때 영월에서 남한강 수운을 이용하기 위하여 조성된 곳이 바로 밀적포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영월 지역의 나루터로 후진과 밀적포가 같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에, 밀적포는 1530년 이전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변천]
밀적포가 만들어진 시점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이 있기 때문에 최소 1530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다. 19세기 중엽에 발간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서는 확인되지 않으며, 이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이 시행될 때 현재의 영월대교 위쪽 상덕촌과 아래 밀적포에서 각각 덕(德) 자와 포(浦) 자를 따서 덕포리로 명명하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밀적포는 조선 시대 강원도 영월 지역의 교통 환경을 잘 보여 준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