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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조선의 건국부터 1876년 개항까지 강원도 영월 지역의 역사. 1392년 조선이 건국된 이후에도 영월의 행정구역은 고려 시대의 행정구역을 그대로 계승하였다. 1399년(정종 원년) 영월은 충청도에서 강원도로 이속되었고, 원주진(原州鎭)에 소속되었다. 1466년(세조 12) 관제 개편 때 지군사(知郡事)가 군수(郡守)로 바뀌었다. 1698년(숙종 24) 노산군(魯山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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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3년 10월 10일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빼앗기 위하여 일으킨 사건. 계유정난(癸酉靖難)은 수양대군(首陽大君)[1417~1468]이 단종(端宗)[1441~1457]의 왕위를 빼앗고자 1453년 10월 10일 일으킨 사건이다. 선대 왕인 문종이 즉위 2년 만에 급서하여 단종은 12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으나 왕권은 약하였다. 문종의 부탁을 받은 김종서 등이 고명대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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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에서 나라가 부과하여 상납한 물품. 공납은 공물 부과에 일정한 기준을 설정하지 않고 민호와 전결(田結)에 토산(土産)을 참작하여 적당히 분정, 부과한다는 규정이 있다. 공물은 ‘토공(土貢)’이라고도 하며 넓은 의미로 진상(進上)·천신(薦新)·명일방물(名日方物) 등도 포함한다. 이와 같은 성격의 공물은 삼국 시대부터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중요한 재원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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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지방 관아 건물. 관풍헌(觀風軒)은 1428년(세종 10) 영월군수 김복항이 건립하였다. 관풍헌은 영월 청령포로 유배온 단종이 홍수를 피하여 1456년 관풍헌에서 생활하였고, 1457년 10월 사약을 받은 곳이다.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었으며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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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5년부터 1457년까지 세조를 몰아내고 단종을 다시 왕으로 세우려 하였던 운동. 단종복위운동은 1455년 10월부터 1456년 6월 1일까지 사육신을 중심으로 한 집현전 학사들이 세조를 몰아내고 단종을 왕좌에 복귀시키려 한 상왕복위운동과 1456년 6월부터 1457년까지 금성대군이 추진한 단종복위운동으로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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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강원도 영월 지역에 있었던 나루터. 밀적포는 조선 시대 강원도 영월 지역에 있었던 나루터이며, 남한강을 이용하여 인력과 물자를 수송할 때 이용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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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강원도에 설치되었던 역도의 일종. 보안도(保安道)는 조선 시대 강원도에 설치되었던 역도(驛道)이다. 보안도 산하에는 21~29개의 역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그중 영월에는 양연역(楊淵驛)과 연평역(延平驛)이 있었다. 보안도는 다른 역도와 함께 조선 국왕의 왕명 및 공문서 전달, 이외 진상품, 공물 운송, 사신 영송과 접대를 위해 활용되었으나 1896년(고종 32) 근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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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 지역에서 『정감록』의 풍수도참 사상을 따랐던 사람들. 조선 후기 들어 신분제가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민중 의식을 갖춘 백성들이 사회의 변혁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조선 후기 사회의 민중들은 전통적인 성리학 체제를 부정하고 불교나 감결(鑑訣) 사상과 같은 전통적인 종교 사상이나 서학과 동학 같은 새로운 종교 사상을 통하여 사회 변혁을 추구하고자 하였다. 조선 후기 민중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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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지역의 조선 시대 송금정책과 황장목을 보호하기 위한 금표. 조선 시대의 송금정책(松禁政策)은 국가에서 필요한 목재를 확보하기 위하여 시행한 것으로, 확보한 목재는 주로 왕실의 관곽재, 건축재, 병선과 조운선을 만드는 데 사용하였다. 하지만 조선 시대의 목재는 특수한 용도 외에도 백성의 생활필수품으로 항시 사용되었고, 긴급한 전쟁 시에는 각종 무기를 만들기 위하여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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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강원도 영월 지역에 있었던 일종의 공공 여관. 연평원은 조선 시대 강원도 영월 지역 고덕재 아래에 있었던 공공 여관이었다. 원은 15세기 이래 수령의 관할 하에 운영되었는데, 국가는 원의 운영자로 원주를 임명하였으며 수축과 위전(位田)을 지급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사회·경제적 변화와 함께 원은 점차 감소하였고, 조선 후기에 와서는 주점(酒店)·여점(旅店) 등이 설립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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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조선 시대 지방통치를 행하였던 업무 공간. 영월군은 단종의 무덤 장릉(莊陵)이 있는 곳으로, 숙종 때 단종(端宗)이 복권되면서 영월군에서 영월부(寧越府)로 승격되었다. 영월부의 관청 건물이 있던 곳은 현재 영월읍 영흥리인데, 현재 관풍헌(觀風軒)과 자규루(子規樓)가 남아 있다. 영월부의 객사는 정청(正廳)인 내성관(奈城館), 서익헌(西翼軒)인 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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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에서 조선 후기 이후 행하여진 일종의 동계. 요선계는 조선 후기 이래 중방동·도곡동·두릉동·하동·도내라는 5개 마을에 거주한 재지사족 가운데 원주원씨, 원주이씨, 청주곽씨가 결성한 동계(洞契)를 말한다. 참고로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은 조선 시대 강원감영이 소재한 원주의 동(東) 4면에 소속된 곳 중 하나였다. 요선계는 단일한 가계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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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강원도 영월 지역에 있었던 일종의 공공 여관. 용정원은 조선 시대 강원도 영월 지역에 있었던 공공 여관이었다. 원은 15세기 이래 수령의 관할 하에 운영되었는데, 국가는 원의 운영자로 원주를 임명하였으며 수축과 위전(位田)을 지급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사회·경제적 변화와 함께 원은 점차 감소하였고, 조선 후기에 와서는 주점(酒店)·여점(旅店) 등이 설립되어 여행자에게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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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강원도 영월군을 포함하여 조선 전역을 침략한 일본군과의 전쟁. 1592년(선조 25) 4월 13일 일본군이 부산에 상륙하였고, 이튿날 부산진성을 공격하면서 일본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일본군은 14일 만에 도성을 함락시켰고, 선조는 평안북도 의주군까지 피난하였다. 명군이 참전하여 평양성을 탈환하였지만, 명군은 벽제관 전투에서 패한 후 일본과 강화 협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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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조선 전기 영월군수 신권근이 세운 누각. 자규루(子規樓)는 『죽석관유집(竹石館遺集)』과 『매산집(梅山集)』에 의하면 1428년(세종 10) 영월군수 신권근(申權根)이 창건한 것으로 처음에 이름은 매죽루(梅竹樓)였다. 그 후 단종이 영월에 유배되어 누각에 오르기도 하고 자규시(子規詩)를 지은 바도 있어서 누각의 이름을 자규루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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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강원도 영월군에 개설되었던 시장. 영월의 장시(場市)는 1770년 당시 읍내장, 신천장, 녹번장, 연평장 등 4개가 있었고, 1830년에는 부내장과 토교리장으로 축소되었다. 1915년 다시 영월시, 주천시, 강림시, 옥동시로 개편되어 1940년대까지 이어졌다. 영월읍의 장시는 광복 이후 중앙시장과 서부시장 같은 상설 시장이 개설되면서 폐쇄되었지만, 녹전시장과 구래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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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강원도 영월 지역에 있었던 나루터. 후진은 조선 시대 강원도 영월 지역에 있었던 나루터이며, 남한강을 이용하여 인력과 물자를 수송할 때 이용하였다....